2017년 3월 19일 일요일

도덕교육이론 -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선문답 및 입선 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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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이론 -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선문답 및 입선

도덕교육이론 -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선문답 및 입선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목 차
Ⅰ. 머리에
Ⅱ.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Ⅲ. 소옹(蘇翁)의 문답법과 선문답
Ⅳ. 쏘크라테스의 입선(立禪)
Ⅴ. 말미에

소크라테스의 입선(入禪)과 선문답(禪問答)
Socrates` Zen-Buddhistic Meditation and Dialogue
요약
플라톤의 대화편을 중심으로 한 고대희랍의 교학사상을 살펴보면 불가(?家). 특히 선가(?家)의 교학사상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왜 그러한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불가(?家), 특히 선가(?家)의 교학사상과 비교해가면서 플라톤의 덕(?)과 지혜(智慧), 소크라테스의 문답법(問答法), 그리고 그의 입선(立?)하는 버릇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결과에 의하면 이 양자의 교학사상은 인간관(人間?)이 같다. 인간은 영혼의 윤회(輪回)를 거듭하는 존재로서 인간이면 누구나 인간을 탁월하게 인간답게 해주는 덕(?)을 지니고 태어나는 존재이다. 그것의 본질은 지혜(智慧)이다. 그래서 이 양자의 교학사상은 덕(?)과 지혜(智慧)의 교육에 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덕(?)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탁월한 지혜(智慧)를 획득하도록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지식이나 기술처럼 교사가 직접적(直接的)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덕(?)에 대한 탐구를 통해 지혜를 획득하도록 간접적으로 이끄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問答法)이며, 선가(?家)의 선문답(?問答)이다. 이 양자의 문답법은 일반적인 문답법과는 달리 답(答)을 일러주지 아니하고 의문을 더욱 증폭시켜 간접적으로 덕(?)이나 불(?)에 대한 탐구를 통해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는 방법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불가(?家)의 선승(?僧)들이 좌선(坐?)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탁월한 지혜의 자리에 좌정(坐定)하듯이 소크라테스가 입선(立?)을 통해 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또 탁월한 지혜(智慧)를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 보면 덕(?)의 교육은 지식이나 기술교육과는 성격(性格)이 판이하게 다른 교육이요, ‘패러다임’을 달리하고 있는 교육이다. 그런 까닭에 덕(?)은 직접적으로 가르칠 수가 있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빼어나게 사람답게 해 주는 덕(?)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이끌어 깨달음을 촉구하는 간접교육(間接?育)이다. 이런 안목에서 보면 라즈(Louis Raths)의 가치명료화이론이나 콜버그(Lawrence Kolberg)의 가치갈등모형은 사이비 도덕교육이론이다.
Ⅰ. 머리에
불교철학(佛敎哲學)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희랍철학(希臘哲學)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다. 라전어(羅典語)나 희랍어(希臘語)도 모른다. 이런 필자가 고대희랍 사상과 불가사상에 관련된 문제를 비교하여 논의한다는 것은 분명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 그러나 교육학적인 안목에서 불가(佛家)의 교학사상, 특히 선가(禪家)의 교학사상과 고대희랍의 교학사상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두 교학사상간에는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교학사상을 비교해서 논의한 논문이나 저서를 발견할 수가 없다. 이에 필자는 시론(試論)으로써 이 두 교학사상간에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를 상재(上梓)하여 전문학자들의 논의의 대상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었다.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불가(佛家)의 교리에 관련된 논문이나 저서들을 읽어보면 불교라는 것이 절대(絶大) 신(神)을 신봉하는 여타의 종교들과는 근본적으로 종지(宗旨)가 다른 종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가(佛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불경(佛經)도 강 건너 저 언덕에 이르면 ‘강을 건너온 뗏목`으로 생각하고 버리라고 이른 것을 보면 1) ‘절대적으로 믿을 것이 없는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이 들고,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로 저가 바로 부처, 즉 부처님과 같이 탁월하고, 뛰어나고, 빼어난 지혜(智慧)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자(佛子)들이 자주 염송(念誦)하는 『반양심경』의 원명(原名)만 보아도 불자(佛子)들의 간절한 소망이 ‘마하(摩訶)’ 급의 탁월한 지혜(智慧)를 획득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그리고 저 자신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탁월한 지혜를 지니고 있는 부처라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가부좌를 틀고 좌선(坐禪)하고 있는 불자들의 모습이나, 가르침이 없는 선사(禪師)들의 가르침에 따라 더 깊은 미궁(迷宮)속을 헤매게 하는 화두(話頭)를 잡고 가슴앓이를 하는 학승(學僧)들의 모습을 보면 낚시 밥에 걸려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보는 듯한 비정한 느낌마저 든다.

덕(德)에 관련된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으면 그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덕(德)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르칠 수 없는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들, 예컨대 『프로타고라스』와 『메논』, 『향연』, 『국가론』 등등을 읽어보면 고대 희랍사람들의 교학사상과 불가(佛家)의 교학사상이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듯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위의 대화편에서 핵심주제로 다루고 있는 덕(德)과 지혜(智慧)가 그렇고, 인간은 죽어가지만 영혼은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윤회(輪廻)를 거듭한다는 쏘크라테스(이하 소옹/蘇翁)의 윤회사상과 그에 따른 회상설, 소옹(蘇翁)의 입선(立禪)하는 버릇이 그런 생각을 자아낸다.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가 인종적으로 인도-아리안 계통인 점을 상기하면 그들 계통의 인종들은 아득한 옛부터 윤회사상(輪廻思想)이나 선(禪)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더욱 짙게 한다. 인도의 선(禪)이 아리안 족이 침입해서 자리잡기 시작했던 B.C. 1,300여년 이전으로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3) 덕(德)에 초점을 맞추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화편들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훨씬 후대인 당송대(唐宋代)에 중국에서 발전한 선(禪)불교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말하는 덕(德)은 불가(佛家)의 ‘반야사상’과 관련성이 깊으며,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1013381&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20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도덕교육이론 -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선문답 및 입선
파일이름 : 도덕교육이론 - 플라톤의 덕성과 지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선문답 및 입선.hwp
키워드 : 도덕교육이론,플라톤,덕성과,지혜,소크라테스,문답법과,선문답,입선,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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